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21세기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을 만든 창업주입니다!
경상남도 의령군 출신으로 호는 호암(湖巖. '호암미술관'의 그 호암이다.)이며, 본관은 경주다. 생전에 많이 불렸던 별명은 "돈병철"이었다. 지금도 나이 지긋한 세대는 옛날 얘기할 때 "돈병철 그 양반은 말이지..." 같은 식으로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할머니들은 자기 손자 부를때 손자의 본명 대신 "철아~"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재벌인 삼성그룹, 신세계, CJ그룹, 한솔, 중앙일보, 새한그룹이 다 이병철에게서 나왔고 이 기업은 범 삼성가라 불리며 재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방 양반가 출신으로 글공부에는 소질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신학문과 장사에서 수완을 보여 부친에게 지원받은 쌀 300석분의 토지를 기반으로 사업을 일으켜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 창업을 시작으로 운수업에도 진출하였으며, 1938년 대구에 삼성상회를 설립, 1939년에는 조선양조를 인수하였다.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부산에 삼성물산을 설립한 뒤, 1953년 제일제당(현 CJ그룹), 1954년 제일모직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그룹 규모의 사업을 펼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부친이 독립협회 활동을 하면서 이승만과 친분이 있었고, 이를 이용해 이승만에게 접촉해 정권과의 연고를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이승만 정권의 여러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하여 이미 5.16 군사정변 당시에는 무시못할 재벌로 성장한다. 그래서 한때 군사정권은 이병철 창업주 등을 부패 혐의로 몰았으나 경제 운용과 성장을 위해 이들과 타협하였고, 이 회장도 군사정권과 협력 관계를 갖게 된다. 그러나 박정희 치하에서 성장한 정주영 회장 등과 달리 이미 기틀이 잡혀 있었고, 출신도 지방 양반가 출신으로 상류층의 품행과 교양을 갖추고 귀족적 사고가 강하던 이 회장은 초기 반 기득권적 성향에 교양 교육을 별로 갖추지 못한 박정희와 사적으로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화폐개혁 당시 박정희를 은근히 디스 훈수한 일화도 있다고 하네요!!!
일찍이 한일은행·상업은행·조흥은행 등과 안국화재·동방생명 등을 인수하였고, 1961년 초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6년 대한암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고려병원을 설립하였다. 또한 1965년에는 중앙일보사를 설립하였다. 삼성장학회 설립, 대구대학[2] 및 성균관대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삼성전자·삼성전기 등을 통해 첨단전자통신 및 반도체기술 발전에 영향을 끼쳤으며, 삼성종합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등 삼성그룹을 성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사카린 밀수 사건 등의 흑역사가 있다. 이때 박정희 정권과 사적 감정이 악화되었다고 하고, 이후 한때 정계 진출을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경영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으나 1968년 삼성그룹에 다시 복귀했다. 이후 장남 이맹희와 차남 이창희를 밀어내고 막내아들(삼남) 이건희를 삼성그룹의 후계 회장으로 지명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차남과 달리 장남 이맹희 회장에 대해서는 사석에서 안타까움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군부독재정권과 이 회장의 악연은 묘하게 신군부에서도 지속되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동양방송이 강제적으로 통폐합되었을 때 당시 방송계에선 이 회장이 분해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이미 일제의 패망을 경제적 흐름 등을 통해 짐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망할 뻔한 상황에서 충직한 심복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도 있다. 시대 통찰이나 사람 관리 등에서 재능을 일찌감치 보였던 모양이다. 후에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하마터면 사형당할 뻔했던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을 포섭해서 중앙일보를 창간해 일찌감치 자사에 우호적인 언론을 만든 것도 그렇고... 다만 아랫사람에게 상당히 고압적이고, 선을 넘으면 가차없는 냉혹한 면이 있던 이병철도 뛰어난 수재로 이름났던 홍진기는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고용한 월급사장이었지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그리고 나중에 사돈 관계까지 맺게 된다. 홍진기의 딸이 이건희의 아내인 홍라희다. 이후 이건희 회장 후계 체제 과정에서 장인인 홍진기가 이병철 회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울러 말년엔 반도체 산업의 전망을 예견하여, 당시에는 도박이나 다름없었던 반도체 산업에 삼성전자가 진출하도록 했다.[6][7] 이후 이 반도체 산업은 삼성이 TV와 휴대폰, 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21세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준다고 합니다!
지난 1987년 폐암으로 타계했다. 여담으로 폐암은 유전될 수 있는데, 큰 아들인 이맹희 전 회장도 폐암으로 세상을 떴으며, 삼남인 이건희 회장도 폐질환 때문에 말년이 영 편치않다. 또 이병철의 대를 잇는 범삼성가에는 일반인보다 약한 폐와 샤르코-마리-투 질환이 유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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